화살이 날아 가는 것을 보듯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보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다.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애쓴 적도 없고, 더욱이나 젊은 시절처럼 꿈과 희망을 가져 보려고 소원을 빌어 본 것도 없었다. 그저 근심 걱정 없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사느냐 하는 것만 생각하였다.
디지털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철 따라 산과 들로 돌아 나녔다. 봄에는 통도사 어느 암자에서 미얀마불교 사진전을 했고, 여름에는 부산 주변의 연 밭을 찾아 연꽃을 찍는 흉내를 내 보았고, 가을에는 전라도 국사봉, 선운사, 선암사, 순천만과 설악산 등등을 돌아댜녔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좋은 예술 사진은 한 장도 찍어 본적이 없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을 스케치한 것뿐이다.
그런데 계사년 (The Year of the Snake)에,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슨간을 느껴 보았다.
지난 어느 가을 아침, 거창의 시골 마을을 찾아 해무 속 농촌 풍광을 찍으러 갔다. 해무가 떠올라 육안으로 앞을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날이 밝아 오면서 바라던 모습이 드러나 보일 적에 순간적으로 생애 매우 즐겁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농부들이 한해 내내 가꾸어 온 농작물을 거두고, 즉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거두고 나서, 다시 부수적으로 동물 (소)의 겨울 먹이를 위해 말려 둔 여물 (Hay)에 해무 사이로 어렴풋이 내 비친 햇살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행복을 느꼈다. 또한 지난 약 40여 년간 취미 삼아 손에 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맛 볼 수 있었지 아니했나 하고 자문해 보았고, 이렇게 아침 이슬이 맺힌 들녘을 거닐 수 있는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 좀 더 열심히 일을 했으면 하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죽기 전에 '좀 더 열심히 일할 걸' 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좀 더 즐기고 아내와 가족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 두 손을 꼭 쥐고 있지만, 죽을 때는 반대로 두손을 편다고 한다.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지만, 죽을 때는 가진 것을 다 내주어 빈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해도 건강을 계속 유지하게 되면 사랑하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황혼기에 삶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베푸는 법을 배워야 되겟다고 생각해 본다.
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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