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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눈물젖은 월남파병

by 전실근 2022. 1. 9.

철모를 쓴분이 필자

해마다 보훈의 달 6월이 오면 나는 으레 월남 파벙시절의 상념에 젖어든다. 필자는 1964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약 20개월이 지난 만 25세에 징집영장을 받아 군 입대를 하였다. 창원 훈련소를 거쳐 육군 제8사단에 배치 받았다가 제9사단 (백마부대) 공병대로 전출 파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이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해 금정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로 허기를 채우면서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했다. 무엇이든 해서 가난을 극복하여 인간답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던 시기였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웠던 지난 60년대 외화를 한 닢이라도 벌어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던 우리 세대의 눈물겨운 일화가 어디 한두 가지던가. 당시 서독에 파견되었던 우리 나라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 64 12월 서독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 앞에서 준비된 연설문을 몇 구절을 읽지도 못하고 통곡의 눈물을 흘렸던 사실은 그때엔 녈리 알려져 있었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그를 보고, 곁에 앉았던 서독 뤼브케 대통령이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겪었을 아픔과 비통함이 남달랐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불과 40년 전의 이 일화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단언하기 어렵다.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고, 월남에 한국군이 파병되던 때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도 안되었다. 먼 이국 땅 전쟁터에서 많은 눈물을 흘린 하찮은 어느 병사의 첫날 밤의 비통한 슬픔은 외국 병원의 음침한 영안실에서 시신을 닦아야 했던 우리의 가녀린 앳된 간호사들이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독일 산간의 땅굴 속에서 밤낮을 지새운 파견 광부들이 함께 겪었던 뼈져린 아픔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도 잊혀가고 있다.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88개월간에 걸쳐 이역만리 월남전선에 312863명이 참전하여 4960명이 전사하고 1962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리는 이런 값비싼 희생으로 세계 만방에 국위를 선양하고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가난에 찌들었던 한 많은 보릿고개를 내딛고 세계 제1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데에는 우리노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조국애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월남 참전 용사들 대부분은 오래 전부터 고엽제로 갖가지 질병에 신음하고 고툥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아무리 호소를 해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형식적인 보상만 내세울 뿐이다. 그것도 확실한 신체적 질병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할 뿐이다. 노병들은 조금이라도 신체적 이상이 있을 때 치료 차원에서 미리 보상을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음에도 쇠귀에 경 읽는 골이다.

지금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위정자들은 과거 보릿고개 시대에 먼 이국땅에서 대통령과 장병, 광부, 간호사들이 조국을 그리며 한없이 흘린 눈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대선 때나 총선 때 언론매체를 통해 명색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흘리는 눈물도 보았다. 이들의 눈물은 자기 개인의 정치적 성취를 위한 가식으로 보였다. 조국과 국민을 위한 눈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국리민복을 생각이나 하는지 묻고 싶다.

요즘 경제가 매우 어렵다. 정부 쪽에서는 잘 될 것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서민들이 겪는 피부경제는 과거 보릿고개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과거 우리 세대가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오늘의 난국을 돌파해가려는 새로운 각오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의 진정한 애국심과 우리 국민 모두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엽제후유증에 시달리는 파월 장병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따뜻한 손길이 있어야 하겠다. (2004 611일 부산일보 제9면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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