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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월남파병 출국선

by 전실근 2022. 1. 9.

1966년9월 20일 부산 제3부두에서 백마부대 장병 약6만명 정도가 3대의 미해군 수송선에 나뉘어 탑승하여 출항했다..나는 본대 함정에 탑승하여 선내 갑판으로부터 밑으로 3층되는 사병 객실에 침실이 배당되었다. 침실은 해먹(Hammock)기둥이나 나무 그늘 같은 곳에 달아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 침낭)이었다.;장거리 해상 수송 시에는 태풍이나 거샌 파도를 만나면 배가 좌우로 최대 45도 각도로 기울기 때문에 특히 배 밑 쪽은 이러한 그물 침상을 이용해야만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본대 사무실에서 본대 대대장(당시 공병대 대대장)이 선내 방숭을 통해 나를 찾는 방송을했는데 못 듣고 이 그물 침상에서 잠이 들었고,얼마 후 어느 장교가 나를 깨우기에 소지품을 챙겨 메고 댁크에 있는 대대장실에 불려 갔다. 대대장께서 이배에 약2만명의 장병이 승선했는데 백마사단의 신부는 탑승을 했으나 기독교 군목은 승선 하지 않아 미해군 군종 목사가 전쟁터에 가는 장병들을 위해 하루에 오전 오후나뉘어 두 번의 예배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통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1964년 2월 부산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11월 25일 입대하여 창원 훈련소를 거쳐;1966년 1월 하순 제8사단 공병대대에 배속되어 대대장과 인연을 맺게되었다.대대장이 9사단 백마부대 공병 대대장으로 전출되어, ;대대장의 권유로 나도 9사단 공병대로 전출되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나는 세례를 받은 기독교 교인은 아니었다.지금도 아니다..내가 거주했던 곳은 서면 하야리아부대 근처라 주일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부대 내 교회를 이용하개 되어 성경을 접하게 되었다. 근 5년 정도 미군 부대 교회를 다닌 것이 바탕이 되어 미해군 수송선내 교회에서 7일간 하루에 두 번씩 설교 통역을 하게 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7일간의 향해 동안 중간에 일요일이 있어 선내 많은 장병들이 틈새 없이 깍착셨다. 당시 나는 일등병으로 수많은 장병들 앞에서 내 나름데로 설교 내용을 충실히 전달 했다. 잊을 수 없는 사실은 군복을 입고 일등병 계급이 나에게는 더없이 자랑스럽웠지만, 해군 목사님이 계급장을 때고 선내 장교 식당을 이용하도록 주선해 주섰고,대대장은 자기와 같이 같은 침실을 사용하도록 해 주신 것에는 ;7일간의 특권의 혜택을 받았다고 본다. 그 당시 미해군 수송선 내 장교 식당은 부풰식당이 아니었고 민간 승무원들이 손수 서버했었다. 전쟁터에 가는 하잘 것 없는 졸병이 이려한 특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드문 일이 었다. 돌이켜 보면 졸업 후 영어 선생이라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겠다는 나의 유일한 꿈의 실현이 이루어진 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7일간의 짦은 일정이지만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추억이고;경험이었다. 그 후 운 좋게 외국기관에 근무하며 영어로 먹고 살게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현재까지 영어를 전공한 것을 후회 해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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