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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월남파병 귀국선

by 전실근 2022. 1. 9.

코로나 팬더믹 관계로 거의 매일 칩거하다 시피 생활하니 지나간 시절의 추억에 젖어 든다.특히 베트남 전쟁 참전 시절의 잊을 수 업는 생생한 기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월남 파병 - 미 해군 수송 선 7일간의 특혜"에서 부산 제3부두에서 미 수송선에 탑승하여 7일간의 항해의 경험을 이야기 했었다. 18개월 동안 참전하고 월남 캄란만(Camran Bay)에서 1968년 2월 26일 역시 미 해군 수송선에 탑승하여 약5일간의 선상에서 있었던 이야기 이다. 부산서 떠날 때와 같이 사병이라 갑판 아래 3층에 선실(헤먹)이 결정되어 쉬고 있는 중 어느 장교가 찾아왔다. 전 병사님 큰일 났습니다. 의무실에 가서 좀 도와 주셔야 되겠습니다 고 말씀하기에 소지품을 챙겨 이 장교를 따라 나섰다. 이 수송선에는 육군 및 해병 파병장병들이 약1만5천명 정도 탑승했다.새벽부터 의무실 앞에 나열해 줄을 서 있는 장병들의 겯 모습은 환희에 잠겨 있는 듯 했으나 실은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감기환자가 대부분이었고 또한 전쟁터에서 얻은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많았다. 미 군의관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지만 많은 장병들이 감기와 다른 질병(구체적인 내용은 삼가한다.)으로 새벽부터 의무실 앞에 줄을 서서 진료를 기다린다고 했다..말이 통하지 못해 진료에 어려움이 있어 영어 통역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로서는 이 의무실에서 약5일간 근무한 것은 또 다른 경험과 특혜였다. 나의 침실은 고급장교 환자가 쓰는 1인 병실이었다. 병실벽에는 환자 음식을 나르는 조그마한엘리베이트가 있었고 완전 특실 호텔방이었다.아침,점심, 저녁 3끼 모두 침실 내에서 초인종만 누르면 약5분내에 음식이 트레이(Tray)에 담겨져 엘리베이를 통해 올라왔다. 짧은 기간이지만 졸병으로서 나의 존재의 가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미국이라는 선봉적인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의 이념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남을 위해 도와 주는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가치관이라고 여겼다.대학에서 미국 문학을 배우면서 미국인들의 가치관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다.비록5일간의 짧은 귀국선의 체험은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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