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이야기이다. 내 나이 21세였고 대학교 2학년 때 였다. 어떻게 하면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학업을 게속할 수 있을까 하고 온갖 생각과 고민에 처해 있었던 시기였고, 미래가 불확실하고, 희망과 꿈을 상상할 수 없는 시기였다. 먹을 끼니도 없으면서 무작정 학업을 이어 가야 겠다는 짐념 뿐이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바로 이맘때 쯤 부전 청과시장에서 수박과 참외 몇 덩어리를 수례에 싣고 온천장에 팔려 간 적이 있었다. 오고 가고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천장 어느 길 모퉁이에서 약 5시간 정도 머물면서 한 개도 못팔고 부전동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오고 가면서 흘린 땀은 얼마를 흘렸는지 상상 조차 할수 없다.
그너나 어떻게하든 입에 풀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을 마쳐야 겠다는 신념만큰은 흔들리지 않했다. 같은 과 학생들에게는 점심을 먹을 돈이 없어도 기대거가 도움을 청해 본적이 없었고, 같이 식당에 가다가 피해 금정산 개울에 가서 흘려 내려오는 물을 마시며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차비가 없으면 학급 친구들을 피해 온천장에서 서면까지 4년 동안 걸은 것은 수를 헤이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4년의 학업을 이수했다. 뒤 돌아 보면 한 맺힌 4년이었지만, 못가진자의 설음은 이루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조금도 가진자와 비교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진자가 없는자에게 대하는 언행을 함부로 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나에게 항상 건딜수 없는 설음이었다. 젊은 시절에 뼈저리게 느꼈던 그러한 설음이 지금 나의 존재를 가져오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 후 주월백마부대에 18개월 파병되었고, 귀국하여 직장을 구해 일하면서 모교인 부산대에서 경영학석사, 영문학 석사 및 박사학위을 취득했다. 남들처럼 가진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환경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지병이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덕분이고 또한 하느님이 보살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19세기 시인 롱펠로의 ‘인생찬가’라는 시에서 한 연(stanza)을 나의 생활의 신조로 여기고 있다.
In the world’s broad field of battle, 세상의 넓고 넒은 전쟁터에서
In the bivouac of life, 인생의 야영지에서
Be not dumb, driven cattle, 말못하고 이리저리 쫒기는 짐승이 되지말고
Be a hero in the strife. 싸움에서 영웅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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