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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5월 - 초원의 빛

by 전실근 2022. 5. 4.

5월 실록의 계절 - 1960년대 상영되었던 영화 '초원의 빛'을 소개한다.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엘리아 카잔 감독의 1961년작 영화. 나탈리 우드 (Natalie Wood, Deanie), 워렌 비티 (Warren Beatty, Bud)주연. 제목인 초원의 빛은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1850)) 시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영화 내에서 고등학교 영어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Deanie (Wood)가 이 시를 읽고 해석하도록 한 시의 구절을 다움과 같이 직접 인용되기도 한다.: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Be now forever taken from my sight,/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Of spe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한때 빛났던 광채 지금 영원히 내 눈에서 사라진들 어떠리, 초원의 빛 혹은 꽃의 영광의 시절이 다시 찾을 길 없는 들 어떠리; 우리는 비탄 않고, 오히려 힘을 찾으리 뒤에 남아있는 것에서..

 

Deanie는 이 시가 마치 자기의 사랑을 이갸기하는 것처럼 느껴져 제대로 읽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석도 하지 못하고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급우들 앞에서 애써 한 손으로 감추면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은 너무다도 애쳐롭게 보였다.

나탈리 우드가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춘 영화로도 유명하다. 배경은 특이하게도 영화 제작년도보다 30~40년은 앞서는 1920년대에서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이후 대공황을 주요 소재로 써먹기 위한 노림수였다.

1960년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외화 중 하나였다. 62년 수입 당시 중앙극장에서 6/8~7/13 간 상영되어 10만명, 그리고 한달 뒤 명동 극장에서 재개봉하여 8/12~9/1112만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2차 수입 때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723/1~5/4 2달간 무려 24만명을 동원해 당시 젊은 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나탈리 우드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보통 이유없는 반항,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보다 이 영화를 먼저 떠올린다.

70대 후반기와 80대 초반기의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그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케 하는 좋은 영화 일 것이고 또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해도 젊은 층에게 역시 그 다지 생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Kansas 주의 어느 작은 시골에 경제 불황으로 불어낙친 침체된 도시와 더불어 강력한 첫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십대에 대한 억압된성욕에 대한 귀결을 동시에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의 결구에는 다음과 같이 술어하고 있다. 젊음의 현실에는 기적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당신이 그들처럼 어느 작은 시골에 살던지 아니면 대도시에 살던 간에

이러한 일은 바로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혹 당신이

좀 더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아마도 기억 할 것이다. 입맞춤이 더 이상

어린아이의 장난이 아니고,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워하며 위험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이 영화의 제목은 영국 낭만파 및 호반의 시인인 위리암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1850)1807년에 쓴 어린 시절 회상하고 영원불멸을 깨닫는 노래’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flections of Early Childhood)라는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시는 모두 11개 연 (Stanza: 보통 일정한 운율을 지닌 4행 이상으로 된 시의 단위) 중에서 10번째 연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 시의 10번쩨 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Then sing, ye Birds, sing, sing a joyous song!/And let the young Lambs bound/ As to the tabor’s sound!/We in thought will join your throng,/Ye that pipe and ye that play,/Ye that through your hearts today/Feel then gladness of the May!/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Be now forever taken from my sight,/Though nothing bring back the hour/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In the primal sympathy/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Out of human suffering/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그러나 노래하라, 너희 새들아! 즐거운 노레를 부르고 불러라! 그리고 어린양들을 뛰놀게 하라. 작은 북소리에 박자 맞추듯! 우리들 마음속에서 너의 무리들에 끼이리라. 피리불고 뛰노는 너희들아, 오늘 너희들의 마음속에 오월제의 환희를느끼는 너회들아, 한때 빛났던 광채 지금 영윈히 내 눈에서 사라진들 어떠라. 초원의 빛 혹은 꽃의 영광의 시절 다시 찾을 길 없다고 한들 어떠라; 우리는 비탄 않고 오히려 힘을 찾으리 뒤애 남겨진 것에서, 과거에도 있었고 항상 있을 것임에 틀림없는 원초적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우려나는 위로의 생각에서; 죽음을 투시한 신앙에서사색적 마음을 가져오는 시기에.

 

초원의 빛는 온각 관습과 기준 그리고 그것에 의해 생길 수밖에 없는 제약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젊은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그 시절 기성에대와 신세대 그리고 남과 여, 거기다가 각 개인 내부에서 발생하는 욕방과 절제와 같은 상반된 요소들을 그려낸 영화 이기도 했는데, 신파조의 사랑이야기까지 더해져 무게감 있으면서도 감성적인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룡한 로맨스 였다..

 

영화는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 혹은 부모들이 원하는 것과의 갈등 그리고 그것의 또 다른 모습인 욕망과 정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결론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 보다는 자신이 원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이야기 이기도 했다.

 

영화속의 인물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부모에게 방항도 하고 또 반대로 부모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 모든 기준이 부모가 될 경우엔 그들 모두가 병들고 만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이나 행복의 기준은 사회나 부모의 것에 맞추다 보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얻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영화의 마지만 10분간은 우리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순간을 선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뒤돌아보면 전체의 내용을 훌륭하게 인식하게해준다. 자칫 성 심리의 멜로 드라마나 한 십대의 아름다운 사랑이 빗나간 내용의 꾸며낸 이야기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이 영화가 젊은 시절의 정열과 고뇌를 거친 후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삶의 용기로 되살라남을 깨닫개 하는 인상적인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으로 본다. . 이 영화를 YouTube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학 3학년때, 월남 파병때, 그 뒤 70년대 후반, 3번 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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