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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Images

가장 가난한 대통령

by 전실근 2022. 2. 20.

무히카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은 부인으로 2017년에 당선된 부통령 루시아 토롤란스키 (Lucia Topolansky)이다.
어느 아랍부호로 부터 대통령의 오래된 차를 자신의 총재산의 4배인 100만 달러 (13억원)에 사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제안을 거절했다. 이 사실이 화제가 되자, 그는, "내가 타는 차에 큰 관심을 두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자동차에는 가격이 붙어 있지만 삶에는 가격이 없다" 라고 말했다.

전 세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동안 매달 미화 12,000불 정도 수령했지만 약 90%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납했다고 한다.  국민의 서민 수준에서 생활한 검소한 정치가라 무척 존경스럽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검소하고 국민의 서민 수준에 맞추어 생활을 하는 정치가라 존경스럽다.

우루과이 제46대 대통령을 지낸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Jose Alberto Mujica Cordano, 87)1935520일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과 함께 꽃을 팔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1960년대에 도시 게릴가 조직인 투파마로스에서 활동한 게릴라 전사 출신이다. 1970년대에 군사 정권이 들어선 후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도 다른 투파마로스 조직원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 활동 준비를 하였다. 교도소 수감 중에 교도소 땅굴을 파 두 번이나 탈출한 탈옥수, 37살에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수로도 기록되었다.

 

1985년 민정 이양 후 석방되었으며, 민중참여운동 (Movimiento de Paticipacion Popular, MPP)에 참여하였다. 1994년 하원의원, 1999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사이 엘 페페 (El Pepe)라는 별칭으로 특유의 인기를 모았다.

 

2005~ 2008년 바스케스 대통령 행정부의 농목축수산부 장관을 지냈고, 인기가 높은 그는 200812월 광역전선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0910월 치러진 1차 투표에서 46,96%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며, 11292차 투표에서 52.6%의 들표율로 라카예 후보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201031일 취임 당시 그의 재산은 현금 1800달러(195만원),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한 대와 허름한 농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다. 가족도 단출하였다. 자녀는 없고, 우루과이 첫 여성 부통령인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Lucia Topolansky,77)와 다리 하나를 잃은 반려견 마누엘라이렇게 '세 식구'였다. 무히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색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무히카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재임 기간에는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었다. 정작 대통령인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 직접 한다. 마당에는 무히카 부부가 오랜 기간 가꾼 꽃과 화초가 무성하개 자라고 있다. 무히카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이런 그를 전 세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히카와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우루과이 부통령. 두 사람은 1970년대 함께 도시 게릴라 조직에서 무장반군으로 활동하며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토폴란스키는 2017년 우루과이의 첫 여성 부통령으로 선출돼었다.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사업에 남몰래 거금을 기부한 일화도 유명하다. 서민주택 사업이 정권 막바지까지 반대에 부딪히자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월급 일부를 이 사업에 내놨다고 뒤늦게 밝히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내 월급을 보내서라도 서민주택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진솔한 고백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총소득세 정책을 통한 조세개혁은 빈곤 감소와 성장률 제고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발 경제 위기에도 우루과이는 매년 평균 5.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치를 존중한 정책으로 국민의 책임감 있는 자유를 보장했다. 그의 퇴임 직후 지지율은 65%, 취임 직후 지지율인 52%를 뛰어넘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20201020(현지시간) 우루과이 의회에서 정계 은퇴선언을 하였다. 는 이날 상원에서 인생에는 올 때가 있고 갈 때가 있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2015년 대통령 퇴임 뒤 상원의원 활동을 해온 무히카는 코로나19 사태로 정계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상원의원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이곳저곳을 다녀야 한다. 사무실에서만 일할 수 없다코로나19가 나를 밀어내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은퇴 연설에서 수십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성공은 승리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남긴 마지막 연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자되었댜.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작별인사를 달았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페페

 

무히카의 매력은 탈권위적이고, 친근하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이다. 이런 그를 우루과이 국민은 페페(Pepe, 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지도자가 있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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